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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여행] 현대적으로 단장하여 재개관한 바르샤바의 쇼팽 박물관

돌담* 2016. 11. 30. 06:00

 

 

현대적으로 단장하여 재개관한 쇼팽 박물관

 

바르샤바 여행의 핵심 장소인 신세계 거리 입구에서 성 십자가 교회 쪽으로 걸어가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예쁘고 아담한 크기의 바로크 양식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이 건물이 바로 <쇼팽 박물관>입니다

쇼팽 박물관은 1954년에 처음 문을 열었으나 내부를 새롭게 단장을 한 후 쇼팽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인 2010년에

하이테크 멀티미디어 박물관으로 재개관한 폴란드에서 가장 현대적인 박물관 중의 하나입니다

 

지하 2층에 지상 3층이라고 하지만 낮은 도로 쪽에서 쳐다보면 지상 5층 건물인 이 박물관은

쇼팽과 관련된 자료를 세계 최대 규모로 보유하고 있고 사진. 악보. 개인적인 편지와 물건. 피아노. 작업 스케치 등이

층별로 전시되어 있어 이곳 전시품들 모두가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합니다

주로 디지털 미디어 형식으로 꾸며져 있어 내용을 설명하기가 어렵기에 일반적인 내용만 간추려 보았습니다

 

 

쇼팽 박물관 - Fryderyk Chopin Museum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전에 이 건물은 <Ostrogski Palace>였다

 

 

쇼팽 박물관의 아름다운 계단실

 

 

프레드릭 쇼팽  (Fryderyk Chopin)

 

쇼팽은 1810년 3월 1일 바르샤바에서 가까운 작은 마을 '젤라조바 볼라'에서

프랑스인 아버지 니콜라 쇼팽과 폴란드인 어머니 유스티나 크자노프스카 사이에서 태어났고

1849년 10월 17일 파리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 쇼팽의 가톨릭교회 세례 기록에는 2월 22일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Nocturne (야상곡) - 2015년  Anna Suwałowska 작품

 

쇼팽의 대표곡 중에 하나인 '야상곡'을 제목으로 한 작품인데.. 심장만 조국으로 돌아온 쇼팽을 표현하였다

 

 

Chopin - 2015년  Magdalena Kielak 작품

 

쇼팽은 첫 피아노 레슨을 6세 때인 1816년에 체코 피아니스트인 <Wojciech Zywny>에게서 받기 시작하여

8세 때에 바르샤바에서 첫 공개연주회를 열었고 중학교 시절부터 쇼팽에게 작곡을 가르친 스승인 <Jozef Elsner>는

쇼팽의 음악적 역량을 키우는 데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지하층에 있는 음악 감상실

 

입장 티켓을 사면 <붉은색 카드>를 하나 받는데 컴퓨터 칩이 내장되어 있는 이 카드를

모든 자료에 터치하면.. 음악 감상은 물론 동영상과 쇼팽에 대한 모든 정보를 보고 들을 수 있다

이 박물관에는 쇼팽 관련 자료가 2,500여 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지하층에 있는 콘서트 홀

 

쇼팽은 1826년 16세에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한 후 1829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발표하고

1829년 19세 때 빈으로 여행을 떠나 유럽 음악계를 견문하고 자작곡 연주회를 열어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인정을 받게 된다

 

 

사후에 주조된 쇼팽의 왼쪽 손

 

1830년 쇼팽은 다시 한번 빈으로 연주여행을 떠났는데 바르샤바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쇼팽은 아버지에게 <조국을 위하여 싸우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귀국하려 했으나

아버지로부터 <조국을 위해 음악을 열심히 하는 길도 애국>이라는 답장을 받고 음악에만 전념을 하였는데

이후 쇼팽은 끝내 조국 땅을 밟지 못하고 심장만 돌아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쇼팽의 자필 악보

 

 

쇼팽의 자필 글

 

자필 편지 6통은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당시 박물관에서 사라진 것을 72년만에 되찾았다고 한다

자필 편지들은 파리에 머물던 쇼팽이 1845~1847  3년동안 바르샤바의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월계관을 쓰고 있는 쇼팽 - 1847년  Cyprian Kamil Norwid 작품

 

 

1번 사진은 쇼팽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Maria Szymanowska

Maria Szymanowska는 그 당시에 폴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2번 사진은 소프라노 Angelica Catalani

금장 포켓시계는 1820년 Angelica Catalani의 콘서트 때 쇼팽이 Angelica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다

( Angelica Catalani는 뛰어난 미모를 지닌 그 시대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로 괴테가 사랑에 빠졌던 여인이라고 한다 )

 

 

이처럼 벽에 영상이 보이면서 음악이 나오는데 음악은 비치된 헤드셋으로만 듣게 되어 있다

 

 

1층에 있는 터널 - 바르샤바에서 지내던 쇼팽의 어린시절에 대한 소개

 

 

쇼팽 박물관 곳곳에는 모양이 다른 피아노들이 놓여 있었는데

이 피아노는 쇼팽이 1848년부터 1849년 사망할 때까지 연주하였고 작곡하였던 피아노이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 (George Sand)

1836년 쇼팽은 소설가인 이혼녀 '조르주 상드'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어

스페인 마요르카의 오두막과 수도원에서 지냈는데.. 쇼팽의 대표작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작곡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애정관계는 10년간 지속되었으나 쇼팽의 건강과 상드의 자녀문제 그리고 상드가 발표한 소설 때문에 헤어지게 되고

상드와 헤어지고 3년 후인 1849년 쇼팽은 죽음을 맞게 된다

 

쇼팽의 마지막 곡은 <Mazurka Op.68 No.4>로

소련에게 고통받는 폴란드를 생각하면서 작곡한 민족주주적인 곡이라 한다

 

 

쇼팽의 약혼녀였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Maria Wodzinska

그러나 쇼팽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염려한 Maria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은 하지 못했다

 

 

쇼팽에게서 레슨을 받았고 후원자였던 Maria Kalergis 백작 부인 

 

 

예쁘게 단장되어 있는 계단실

 

 

3층에는 쇼팽이 여행한 유럽 여러나라들을 음악과 접목시켜 놓은 곳이다

 

 

'젤라조바 볼라'에 있는 쇼팽의 생가  (구글 자료)

 

쇼팽은 <자신의 육신은 비록 파리에 묻히지만 심장만은 폴란드에 묻어달라>는

그의 유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국에 대한 사랑은 지극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조국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뿌리이면서 영혼의 안식처이기에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하면서.. 힘이 있고 살기좋은 나라로 만들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