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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여행] 도시 위에 도시가 건설된 복합 유적지 '트로이'

돌담* 2015. 3. 4. 06:42

 

도시 위에 도시가 건설된 복합 유적지 '트로이'

 

트로이..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이고 그 다음이 트로이의 아가멤논 왕과 헥토르 왕자 그리고 아킬레스가 등장하는 영화 '트로이'입니다

이 '트로이 전쟁'은 실제 유적이 발굴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신화 속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가 무언가 사실에 기초한 것이라고 확신을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하인리히 슐리만>입니다

 

독일 출신 사업가이자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처음에 트로이라고 생각한 지역은 이곳이 아니였는데

그 이유는 당시 대다수의 고고학자들이 트로이 유적지를 보다 내륙 쪽에 있는 부나르바시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슐리만이 트로이에 대해 독자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던 미국 부영사 '프랭크 칼버트'를 만난 후부터

생각을 바꾸어 지금의 지역인 <히사를리크 언덕>에서 발굴 작업을 한 결과 트로이 유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트로이 유적지 입구에 서 있는 '트로이 목마'

트로이 유적지가 있는 <히사를리크 언덕>은 아나톨리아 지방 북서부, 스카만데르 강 북쪽과

헬레스폰트 해협의 남쪽 어귀로부터 약 6.4 km 떨어진 트로아스 평야에 있다

 

 

높이가 약 9.1 m (30 피트)인 '트로이 목마'

 

 

계단을 오르면 넓은 전망대가 나타나고 다시 계단을 이용하여 한층 위의 제일 높은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목마 옆에는 트로이 시대의 의상과 무기가 비치되어 있어 다양한 모양의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와같은 사진 촬영비는 인원이 많더라도 10 리라 (5,200 원)

 

 

트로이 유적은 연대에 따라 크게 아홉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층 : BC 3,000 년 ~ BC 2,500 년

제2층 : BC 2,500 년 ~ BC 2,300 년

제3,4,5층 : BC 2,300 년 ~ BC 1,700 년

제6층 : BC 1,700 년 ~ BC 1,250 년

★ 트로이 전쟁 시기 : BC 1,260 년 ~ BC 1,240 년

제7층 : BC 1,250 년 ~ BC 1,000 년

제8층 : BC 1,000 년 ~ BC 85 년 (알렉산더 대왕 시대)

제9층 : BC 85 년 ~ AD 500 년 (로마 시대)

 

 

트로이 유적지에는 건물은 한채도 보이지 않고 성벽과 원형 극장 그리고 건물의 터만 남아 있었는데

아홉층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 유적지는 도시 위에 도시가 건설되어 있는 복합 유적지이다

 

 

이런 복합 유적지 발굴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은 미국 부영사 <프랭크 칼버트>였다

그는 독자적인 연구를 통하여 <히사를리크 언덕>에 트로이 유적이 잠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하여 히사를리크 언덕 일부를 직접 사들였을 정도였다

 

 

제1층 (BC 3,000 년 ~ BC 2,500 년) 시대의 성벽

 

 

트로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슐리만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아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그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시대만을 염두에 두고 발굴했기 때문에 BC 2,000년 이후의 유적은 파괴하고 말았다

이후 슐리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깊이 뉘우쳤지만 그리스 이후의 유적은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트로이 유적 중에 제2층의 유적이 가장 규모가 컸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제2층에서 사진에서 보이는 형태의 견고한 성벽 위에 웅장한 성문이 있는 메가론식 건물 흔적이 발견되었고

황금 관이나 황금 목걸이 같은 화려한 유물도 다수 출토되었다

( 메가론이란 고대 그리스와 중동에서 볼 수 있는 건축 형태로 주택의 가운데에 있는 큰 방을 말한다 )

 

 

제2층의 성벽과 입구 부분

 

 

최초 발굴 당시에 슐리만은 제2층의 트로이를 호메로스가 말한 트로이라고 단정하였는데

이는 유적이 전쟁의 흔적으로 보이는 잿더미 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후 연구를 통해 트로이 전쟁의 무대는 제7층인 것으로 밝혀졌고 당시 트로이는

미케네 문화권에 속해 있었으며 주변 해협을 지배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여서 무역으로도 번영을 누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870년 4월 <히사를리크 언덕>에서 처음 발굴 작업을 시작한 슐리만은

1873년 6월 드디어 트로이의 유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슐리만은 유적지에서 발굴한 트로이의 값진 유물들을 불법적으로 빼돌려 독일 베를린으로 가져갔고

1881년 베를린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유물을 공개하여 찬란했던 트로이 문화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1945년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은 이 유물들을 탈취하여 금,은 보물 259점은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에 소장하고

도자기류 414점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슈 미술관에 소장하였다

 

 

트로이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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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만은 이 유물들을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이름을 빌려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고 불렀다

 

 

발굴된 유물 중 하나인  'Head of Athena'

 

 

 슐리만 이후 트로이에 대한 발굴과 연구는 그의 동료인 빌헤름 되르펠트가 계승하였는데

되르펠트는 슐리만과 함께 트로이 발굴 작업을 하였고 트로이 각층의 연대를 체계적으로 구분한 인물이다

 

 

이후 트로이는 칼 블레겐이 지휘하는 신시네티 대학 연구팀에 의해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졌고

1988년부터는 튀빙겐 대학의 맨프레드 코포만 교수의 지휘 아래 구성된 국제 발굴팀이 발굴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복구 작업과 함께 지구물리학적 작업과 지질학적 작업이 병행되고 있다고 한다

 

 

유럽 역사와 문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고대 도시 트로이는 터키 정부의 승인으로 역사국립공원이 되었으며

199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 시대와 로마 시대인 제8층, 제9층의 유물들

 

 

가운데 원형 구멍은 우물이다

 

 

로마 시대인 제9층의 유물 '원형 극장'

 

 

트로이 유적지 중에 복원이 제일 잘 되어 있는 '원형 극장'

 

 

차낙칼레 선착장에 서 있는 '트로이 목마'

이 목마가 2004 년 제작된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영화 'Troy'에 등장했던 목마이다

 

트로이는 5천년이 넘는 오랜 기간동안 수많은 시인들에게 풍부한 영감을 제공하여 왔으며

그 역사를 읽은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서 불후의 생명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권력과 승리와 사랑 등 다양한 주제가 얽혀 있는 이 끝없는 이야기가 신화에서 현실이 되어 있는 지금

귀중한 고고학적 유물 속에서 미약하게나마 트로이 영웅들의 숨결을 느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