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 니콜라스 교회
성탄절 전야에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산타클로스>의 고향이라면
북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로 생각이 되지만 사실은 터키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 '파타라'입니다
안탈리아 주의 작은 도시 겔레미스 근처에 있는 '파타라'는 산타클로스로 불리고 있는 <성 니콜라스>가 태어난 곳이고
성 니콜라스는 지금은 '데므레'로 불리는 '미라'에서 주교 신분으로 그의 인생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성 니콜라스 교회는 니콜라스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교회로 서기 5세기~12세기까지 사용이 되었는데
지진과 아랍인들의 침략으로 파괴와 복구가 반복되면서 11세기에는 수도원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3세기 이후에는 미로스 강의 퇴적 작용으로 인하여 교회 주변이 서서히 흙으로 파묻히면서 폐허로 변하였고
주변 지역보다 6m 정도 낮게 있었던 교회는 1960년 대에야 본격적인 발굴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데므레'로 불리는 '미라' 시내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산타클로스인 '성 니콜라스'의 동상이었다
'미라' 시내의 모습
시내의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조용하면서 깨끗하였다
도로에 면해 있는 '성 니콜라스 교회'
'성 니콜라스 교회'는 도로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건물 일부분에 지붕이 없어 이에 따른 훼손을 막기 위하여 보호 지붕이 설치되어 있었다
교회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성 니콜라스'의 동상
니콜라스는 270년에 '파타라'에서 태어났고 343년 죽을 때까지 '미라'에서 주교로 재임하였다
교회 일부분에 지붕이 없어 보호 지붕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
기둥과 벽 그리고 천장까지 성화가 그려져 있어 건립 당시에는 교회 내부가 무척 화려했을 것 같았다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었던 교회 내부
특히 이 벽화 아래 많은 관람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그림의 내용은.. 니콜라스가 감옥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가 한 밤중에 나타나 니콜라스에게
성서를 건네는 모습이라고 한다 (가운데 니콜라스가 들고 있는 것이 성서이다)
여러가지 색상의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마감이 되어 있는 통로
'성 니콜라스'의 석관
니콜라스가 죽은 후 그의 유해는 이곳 미라에 묻혔으나 미라가 이슬람인들에게 넘어가게 되자
이탈리아의 뱃사람들이 훔치다시피 하면서 1087년 이탈리아 남부의 '바리'로 옮겨 이 교회에는 석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천장에 그려져 있는 예수와 제자들의 성찬 모습
성화가 있는 곳에서 촛불을 들고 기도를 하고 있는 관람객
비잔틴 양식의 <성 니콜라스 교회>는 가운데 돔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연결된 정방형 건물로
동쪽에 4 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는 <제단>과 10단으로 만들어진 반원형 돌계단(의자)이 있었다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던 니콜라우스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자신에게 막대한 유산이 돌아오자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에 사용하였다고 하며
기독교를 믿은 후 신부가 되었고 서기 4세기 경 미라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니콜라우스는 주교 재임 시에도 많은 선행을 베풀었고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하였을 때는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으나
325년에 리키아 공의회에도 참석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난파를 당한 뱃사람들을 보살펴주고
'미라'에 기근이 들었을 때 지나가던 곡물 운반선으로부터 곡식을 구해서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연고로 인해서
니콜라우스는 지금까지 지중해 지역 선원들에게서 <수호 성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한다
니콜라스의 선행은 여러가지 내용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그 중에 가난한 집안의 세 딸에게 밤중에 몰래 지참금을 주고 간 일화가 제일 유명한데 이 이야기는 수세기를 거치면서
니콜라스의 축일에 아무도 모르게 선물을 주는 관습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교회 내부에 그려져 있는 그림 중에 '성 니콜라스'로 추정되는 그림
성 니콜라스 교회의 복원 작업은
1989년부터 안탈리아 박물관과 이스탄불 대학에 의해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터키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이 교회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 위 작은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또 다른 '성 니콜라스'의 동상
동상의 기단부에 붙어 있는 태극기
거칠게 붙어 있었지만 몇 개 안되는 국기 중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공원에서 본 모자익 타일로 만든 그림 - DEMRE(데므레)는 '미라'의 현재 이름이다
지금처럼 산타클로스가 순록을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로..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효시였으며
본래의 키가 크고 보통의 모습에서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몸매의 산타클로스로 바뀐 것도
'토마스 나스트'라는 19세기 만화가가 20년 동안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면서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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