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들 속에 있는 아름다운 휴양 도시 '시데'
메블라나의 도시 <콘야>를 떠나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 도시인 <안탈리아>로 가는 도중에
유적 속에 조성되어 있는 도시이자 바닷가 휴양지로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는 고대 도시 <시데>에 들렸습니다
고대 도시라고 하지만 이곳 유적들도 대부분이 파괴되어 일부분만 본래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유적들이 해안가 건물들과 어울리며 그윽한 역사의 향기를 풍기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래의 도시 모습이 그려져 있는시데(SIDE) 안내도를 보니 안탈리아의 옛 이름인 '팜필리아'의 수도답게
웅장한 규모의 건물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번영을 누렸던 그 시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길 양쪽에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도로는 세계 어느나라의 유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답고 특이한 형태였고
상수도 역할을 하는 거대한 공중 수도교가 도시를 가로질러 서쪽 항구까지 길게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콘야를 떠나 안탈리아로 가는 길
고대 도시 <시데>의 원래 모습
A 도시 성벽. B 출입문. C 열주가 있는 도로. D 주거지. E 베스파시아누스 문. H 원형 극장
I 공중 수도교. N 항구. P 집회 광장. R 궁전. S 상점. T 신전
우리 일행은 차를 타고 출입문 (B)로 들어가.. 입구 도로인 (C)를 지나.. 베스파시아누스 문(E) 앞에서 하차한 다음
걸어서 상점들이 있는 (C)도로를 지나 서쪽에 있는 항구인 (N)에서 점심을 먹었고
해안 길을 따라 걷다가 신전을 구경한 후 남쪽 해안 길을 거쳐 하차한 장소로 되돌아 왔다
( 원형 극장을 중심으로 항구 반대쪽인 동쪽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
출입문에서 '베스파시아누스 문'까지의 도로 모습
길 양쪽에 줄지어 늘어서 있었던 기둥들은 이처럼 흔적만 남아 있었다
베스파시아누스 문 -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 황제의 이름이다
로마 양식의 원형 극장과 집회 광장 (앞 부분)
집회 광장
원형 극장 출입구 부분과 극장 앞을 지나는 도로를 따라 서 있는 열주
열주(列柱)는 '줄지어 늘어선 기둥'을 뜻한다
예전에는 모든 도로에 이와 같이 양쪽으로 기둥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원형 극장을 지나 서쪽 해변쪽으로 가는 길
도로가 십자형으로 나 있어 도로의 오른쪽 끝도 해변에 닿아 있었다
길가 상점에서 자주 보았던 터키 전통 젤리 '로쿰'(Lokum)
일반 젤리보다 달지 않으면서 쫄깃한 감칠 맛이 있는 '로쿰'은 15세기 경부터 만들어진 전통 요리로
처음에는 꿀이나 당밀을 겉에 바른 '밀가루떡'에 가까웠으나
1777년 이스탄불에서 사탕가게를 운영하던 베키르(Bekir)라는 사람이 지금과 같은 로쿰을 만들었다고 한다
로쿰은 녹말과 물. 설탕. 레몬즙이 전부이고 향을 위해 민트나 장미꽃물을 추가할 뿐이지만
여기에 어떤 견과류를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상점. 카페. 식당. 기념품가게들이 즐비하게 있었던 시데의 메인 도로
도로에 면한 건물들은 기둥의 흔적도 없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의 건물 같지는 않았다
도시의 서쪽 해변
팜필리아의 수도였던 '시데'는 시데탄이라는 독자 언어를 썼다고 한다
이 언어는 청동기 시대에 터키 남서부 아나톨리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사용한 '루비아어'로 발전하였는데
시데는 루비아어로 <석류>라는 뜻이다
기원전 540년 경 이 지역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기원전 334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항복해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해적들이 이 도시를 자유 도시로 선포한 뒤 그들의 소굴로 삼으며 도시가 발전하였으나
기원전 67년 이를 보다 못한 로마 제국의 폼페이 장군이 해적들을 소탕하고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두었다
해변가 식당에서 점심으로 먹었던 요리
Lamb Chops라는 이름의 이 양고기 요리가 터키 요리 중에 제일 괜찮았다
로마 제국은 이곳에 해군 기지를 두면서 도시는 더욱 융성해 졌고 이 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그 때문에 유대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가 전파되었고 사도 바울이 순례 여행 중 이 도시를 들리기도 하였으며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을 때 '시데'가 팜필리아 지역의 첫번째 주교 도시가 되었다
시데는 비잔틴 시대에도 발전했으나 서기 7세기 들어 아랍이 지중해 무역을 주도하면서
도시는 점차 중요성을 잃고 소규모로 줄어 들다가 13세기 셀주크 왕조의 지배하에 넘어간 뒤 도시는 버려졌다
해안에 있는 신전
기둥 5개만 남아 있는 유적이 '아폴로 신전'이고 왼쪽에 구멍들이 보이는 유적이 '아테나 신전'이다
아롤로 신전 앞에 있는 이 바다가 지중해이다
19세기 말 오스만 제국에 맞서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봉기가 일어 났을 때
그리스 정부가 여러 섬들을 합병하자 섬에서 달아난 그리스인들이 시데에 정착해 마을을 새로 건설하면서
마을을 술탄의 아들 이름을 따서 '셀리미예'라고 불렀으나 나중에 자치권을 회복한 후 다시 '시데'로 고쳤다고 한다
시데의 유적이 발굴된 시기는 1947~1966년 이고
이곳을 발굴한 사람은 터키의 고고학자 아리프 뮤핏 맨셀 박사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해안 길을 따라 걷다가 신전을 구경한 후
도시 남쪽에 있는 또 다른 해안 길을 거쳐 원형 극장이 있는 쪽으로 되돌아 왔다
예전의 시데는 모든 시설이 잘 갖추어진 너무나도 아름답고 살기 좋은 해안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남아 있는 유적들이 너무 심하게 파괴되어 도시 원래의 모습은 안내도로만 추측을 할 수 있었지만
물빛 고운 지중해와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 때문에 며칠 머물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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