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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마음을 가진 논개 생가지

돌담* 2012. 5. 10. 06:00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마음을 가진 논개 생가지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는 간단한 기록만 전해지고 있는 논개

그 때문에 논개는 기생이었다고만 알려지게 되었는데

경남 함양군 서상면 방지리에 있는 논개의 무덤과 왜장을 껴안고 죽은 진주의 촉석루에서 보다

전북 장수군 대곡리 주촌마을에 조성되어 있는 '의암 주논개 생가지'의 기념관에서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논개에 대한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의 논개 생가는 1986년 대곡저수지 축조 공사로 수몰되었으나

논개 할아버지가 함양군 서상면에서 재를 넘어와 서당을 차렸던 곳으로 알려진 이곳에

2만여 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1997년부터 4년간에 걸쳐 논개 생가를 복원하면서

남편인 최경회의 비와 나란히 논개의 비를 세우고 단아정. 논개 기념관 등을 새로 세우는 등

논개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임을 알리는 생가지가 조성되었습니다

 

 

생가로 들어가는 관문인 '의랑루'에서 바라본 생가지

계단 위로 멀리 논개의 입상이 보이고 그 뒤로 논개 부모의 묘가 보인다

 

 

논개가 어릴 적에 또래들과 뛰놀던 장소에 조성된 연못 - 정자의 이름은 '단아정'이다

 

 

단아정의 뜻이 적혀 있는 석비

 

 

주논개 입상

 

성이 주씨(朱氏)인 논개는 1574년 9월 3일 전북 장수군 주촌마을에서 양반가의 딸로 태어났다
열네 살 나던 해인 1587년 아버지 주달문이 죽자 건달인 숙부가 토호인 김풍헌에게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고 행방을 감추었는데 이 사실을 안 논개 모녀가 외가인 안의의 봉정마을로 피신하였고

김풍헌이 당시 장수현감인 최경회에게 이를 알려 모녀는 심문을 받게 되었다

논개 모녀로부터 전말을 들은 최경회는 이들에게 죄가 없음을 인정하는 한편 관아에 머물면서

병약한 부인 최씨의 시중을 들게 하였는데 논개의 재색에 감탄한 부인이

최경회에게 논개를 소실로 맞이할 것을 권유한 뒤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논개는 18세가 되던 해인 1591년 봄 최경회와 부부의 인연을 맺고

무장현감으로 부임하는 최경회를 따라 장수를 떠났는데 최경회가 1593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하여

진주성 싸움에 참가하게 되자 논개도 진주길을 떠났고 수많은 군관민이 사망하면서

28일만에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을 하게 된다

1593년 7월 일본군 왜장들이 승리를 자축하기 위하여 촉석루에서 주연을 벌이는 장소에

논개는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계획대로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가락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꾀어

벽류 속에 있는 바위에 올라 껴안고 남강에 떨어져 적장과 함께 죽는다


훗날 이 바위를 의암(義岩)이라 불렀으며 진주성 싸움에서 살아남은 장수 의병들이

최경회와 논개의 시신을 건져 장사를 지내려고 운구해오다 함양군 서상면 방지리 골짜기에 묻었다고 한다

 

 

경남 함양군 방지리에 있는 최경회와 정실이 안장된 묘소 아래에 있는 '논개의 묘'

그리고 왜장을 껴안고 떨어져 죽은 진주 남강의 의암바위

 

 

만해 한용운의 '논개의 애인되야서 그의 묘에'라는 시를 새겨 놓은 시비 - 가락지 형태이다

 

 

논개 기념관

 

 

기년관 입구에 있는 논개 영정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꾀어 바위에 올라 껴안고 남강에 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한 모형

 

 

전시관에 있는 최경회에 관한 글

 

 

논개 생가터와 남강 의암바위

 

 

논개 생가로 올라가는 길 양쪽에 세워져 있는 비각

오른쪽 비각에 주논개의 비가 세워져 있고 왼쪽 비각에 최경회의 비가 세워져 있다 

 

 

복원해 놓은 '논개 생가'

 

 

생가의 내부 모습

 

 

논개 생가지 옆에 있는 '논개생가마을'

 

 

생가지가 조성됨에 따라 생가마을도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초가집들이 한집 두집.. 돌기와를 얹은 가옥으로 개축이 되었고  

 

 

마을길도 보기좋게 단장이 되어 있었다

 

 

오른쪽이 논개생가마을로 가는 길이고 왼쪽이 생가지로 가는 길이다

 

 

변영로의 시 '논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娥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