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티슬라바를 대표하는 브라티슬라바 성
슬로바키아와 체코의 문화 유산을 비교하여 생각해 보니 체코 쪽에 남아 있는 유산들은
슬로바키아 쪽에 있는 유산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컸고 더욱 아름답게 치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시가의 넓이도 프라하가 훨씬 넓었는데 이는 슬로바키아가 오랜 세월 동안 주변국들의 지배와 합병 등으로
수도인 브라티슬라바까지 제2의 도시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슬로바키아의 이런 역사적 이유로 인하여 브라티슬라바를 대표하고 있는 성(왕궁)은
헝가리 왕국 등 여러 왕국의 지배를 받던 9세기에서 18세기까지 건설되었으나 기간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브라티슬라바 성>은 다뉴브 강변의 바위 언덕 위에서 브라티슬라바의 구시가를 대표하는 건물로
<성 마틴 대성당>과 함께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슬로바키아의 명소였습니다
해발 150m인 카르파티아 산 남쪽 언덕에 세워진 <브라티슬라바 성>
트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야 한다
흰색 건물이 왕궁이며 직사각형 형태이다
오랜 기간 동안 건설되었기에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이 건물에 혼합되어 있다
바로크 스타일로 1712년에 세워진 víťazná brána (승리의 문)
왕궁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문이다
승리의 문과 왕궁 사이의 공간을 Honorary courtyard (명예의 안뜰) 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 <Svatopluk 1세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Svatopluk 1세는 보헤미아와 그 주변을 포함한 대 모라비아 왕국을 건설한 왕이다
왕궁 건물의 주 출입구
왕궁은 9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오랜 기간 건설되었으나 1809년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파괴된 후 1811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체코슬로바키아 정부 때인 1956년부터 1964년까지 복원 공사를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의 내.외부가 무척 깨끗하게 단장이 되어 있었다
현재도 왕궁의 일부분은 슬로바키아 의회로 사용되고 있는데
체코슬로바키아 정부 때에는 대통령의 블라티슬라바 거처이자 슬로바키아의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Rebecca and Eliezer - Carlo Maratta (1625~1713) 작품
Madonna - Giovanni Battista Salvi (1609~1685) 작품
Saint Peter - Karl Loth (1632~1698) 작품
Christ in the House of Mary and Martha - signed LG Roma : 17th century (?)
Fragments of apron from the Gothic orial (고딕형태 내민 창의 앞 치마 모양 조각들) - 15th century
도자기
갑옷
투구
왕궁에서 내려다 본 West terrace 쪽 건물
왕궁과 북쪽 성체 사이에 조성되어 있는 정원
남쪽에 있는 성벽에서 내려다 본 다뉴브 강과 현수교인 Most SNP (Bridge of Slovak National Uprising)
왕궁에서 성 마틴 대성당으로 가려고 남쪽에 있는 성벽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성의 부 출입문인 <Sigismunt Gate>로 향하는 경사길
남쪽에 있는 출입문인 <Sigismunt Gate>
15세기에 건립된 문으로 '브라티슬라바 성'에서 보존 상태가 제일 좋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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