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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나미비아여행] 대금 연주의 추억이 있는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

돌담* 2014. 1. 17. 06:30

 

대금 연주 추억이 있는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

 

아프리카에서 가장 번영한 상공업도시인 요하네스버그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있는 명소들이 많은

케이프타운 투어를 끝내고 남아공을 떠나 방대한 자연 유산을 지니고 있는 나미비아로 향하였습니다

나미비아는 원주민인 나마족 말로 '대평원'이라는 뜻이며 1884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는 독일령 보호국이었고

1920년 이후에는 국제연맹에 의해 남아공의 위임통치를 받았으나 1990년 독립국가가 된 신생국입니다

 

이런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지금도 나미비아 내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와 그 곳에 딸린 위락시설들은 물론

사막 한가운데 있는 간단한 숙박시설인 롯지(Lodge)까지도 대개 독일인들이 운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미비아 제1의 관광지인 '에토샤 국립공원'을 비롯하여 나미브사막 내에 있는 '붉은 모래언덕'인 소수스플라이와

부시맨과 힘바족이 살고 있는 마을을 돌아보고 나니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케이프타운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국제버스인 인터케이프를 타고 나미비아로 향하였다

 

 

케이프타운에서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Windhoek)까지는 2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여

오전 10시쯤 출발하였다

 

 

버스는 밤새 평원을 달렸고 나미비아의 고원지대를 지나면서 해돋이가 시작되었다

 

 

빈트후크 근교에 이르자 강한 색상의 집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우리 일행이 짐을 푼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펜션 형태의 숙소

세계 여러나라의 배낭여행자들이 머물고 있었고 방마다 2층 침대가 여러개 놓여 있었다

(세면장. 샤워실과 주방을 공동으로 사용하기에 조리시간도 배정이 되었다)

 

 

숙소 벽면에 걸려 있던 민속 목각 탈

 이런 모양의 목각 탈은 오후에 빈트후크 시내를 거닐면서 길거리 좌판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늦은 아침을 먹은 후 시내 구경에 나섰다

 

 

빈트후크의 명소인 의회 공원 (Parliament Gardens)

숙소에서 멀지 않아 걸어서 도착하였는데 공원 주위에 나미비아 국회의사당과 나미비아 국립박물관.

그리고 1910년에 세워진 아름다운 루터교회 Christ Church Windhoek가 있었다 

 

 

나미비아 국회의사당 (Parliament of Namibia)

 

 

복고풍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루터 교회 (Christ Church Windhoek)

 

 

나미비아 내전에서 죽은 독일 병사와 독일인을 기리기위해 세운 기념비 (Reiterdenkmal Windhoek)

 

 

나미비아 국립박물관 (National Museum of Namibia)

박물관 입구 회랑에는 예전에 사용하였던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내부에는 생활에 필요한 집기. 의상. 악기와 사진 그리고 창과 활. 방패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국립박물관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들

 

 

실로폰 처럼 생긴 전통 악기

 

 

원주민의 항아리와 독일인이 사용한 것 같은 생활용품들

 

 

박물관 앞뜰에 서 있는 쿼버 트리 (Quiver Tree)

바오밥 (Baobab Tree). 엄블렐라 아카시아 (Umbrella Thorn Acacia Tree)와 함께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나무이다

 

 

공원에서 만칼라 (Mancala)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 남자들 - 아무리 보아도 룰을 알 수가 없었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본 목각 기념품들

 

 

늦은 저녁.. 빈트후크 숙소에서 인형말을 갖고 마리오네트를 해 보이는 유럽에서 온 배낭여행자

 

 

앞으로 11일 동안 나미비아의 사막과 원시부족마을 그리고 잠비아의 빅토리아폭포까지 타고 다닐 사파리용 트럭

 

 

나미비아 우표

 

빈트후크의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에는 여러나라에서 온 배낭여행자들이 머물고 있었는데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갖고 있는 음료수를 지참하고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뒷뜰에 모여 앉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간단한 말을 주고 받으며 대화의 시간을 가졌지만 밤이 깊어지자

나라별로 사람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고 이때에 악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 일행 중에 한 명이 대금을 갖고 온 사람이 있어 대금 연주를 하였는데

<우리의 소리>를 들은 외국인들의 폭발적인 환성으로 인하여 이 날은 대한민국의 날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