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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해미순교성지'와 병인박해 그리고 외규장각도서

돌담* 2011. 4. 29. 06:30

 

'해미순교성지'와 병인박해 그리고 외규장각도서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순교지'와 '성모 발현지'가 어느 곳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곳에는 예외없이 교회나 성당이 세워져 있었지만..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공통적으로

주변에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갖고 있거나 성지와 관련된 볼거리들이 있었습니다

거룩한 성지만 보고 오는 것이 아니고 머물면서 돌아볼 수 있는 요소들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서산에 있는 '해미순교성지'도 '해미읍성'과 연관지어 볼 수 있는 순교지로서

'병인양요'와 프랑스에서 약탈해 간 '외규장각도서'와도 연관이 있는 성지입니다

 

1866년 가톨릭 탄압의 교령(敎令)이 포고되자..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학살당한 것을 필두로

불과 수개월 사이에 국내 신도 8,000여 명이 학살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계속하여 체포 못한 3명의 프랑스 신부와 신도들의 행방을 찾고 있었기에

이를 피해 산속으로 피해 다니다가 병이나 굶주려 죽는 부녀자와 어린이가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이때 탈출에 성공한 리델 신부가 톈진[天津]에 있는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병인양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조정에 보고된 내용에 의하면.. '해미 진영'의 천주교 신자 처결의 숫자는 1천여 명이며

1866년 이후의 병인박해기에는 122명에 이르는 순교자가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해미순교성지

 

 

당시 죽음을 앞둔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 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 소리를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들어 이곳을 '여숫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성당과 소성당이 있는 건물

해미성지는 1975년 16m 높이의 '순교탑'을 세운 후

1985년 해미본당을 창설하였고 2003년 6월 17일에 기념성전을 건립하였다

 

 

순교기념전시관 (해미순교성지기념관)

 

 

성지기념관 외벽면의 부조

 

 

기념관 문을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7개의 조각

 

해미 성지는 다른 어떤 순교지보다도 당시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백 년의 박해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서슬이 무뎌지지 않았던 해미는 수천 명의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웅덩이와
구덩이로 내몰린 채 생매장 당한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는 곳이다

 

 

인언민                                                 김진후                                                 이보현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순교자들은 그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순교자들 중 132명이 이름과 출신지를 남기고 있으나 나머지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들이다

1801년의 신유박해 이전 해미에서는 인언민(마르티노)과 이보현(프란치스코)이 순교하였고
1811~1839년의 기해박해 이전에는 김진후(비오)가 1814년에 옥사한 것을 비롯하여 모두 8명이 순교하였다
또 병인박해기에는 122명에 이르는 순교자가 이곳에서 발생하였다
이처럼 해미의 유명 순교자는 모두 132명에 이르는데 여기에 무명 순교자 47명 이상의 수를 더하면
기록으로 확인되는 박해기의 순교자 총수는 179명 이상이 된다

 

 

해미 순교자 유해를 처음 발굴한 프랑스 신부 발오 Barraux (범베드로)

 

1935년 서산 본당 범베드로 신부에 의해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들이 발굴되어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되어 있었는데.. 1995년 순교자 대축일에 원래의 순교터인 생매장 순교지 순교탑 앞으로 이장되었다

 

 

머리채를 묶인 순교자들이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회화나무 가지

이 회화나무 가지는 '해미읍성'에 있는 원래의 회화나무에서 2004년 수술시 제거된 부분이다

 

 

해미읍성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해미 읍성에는 교우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가 있고

그 옆에는 고문대로 쓰던 '호야나무'가 남아 있다

이 나무 위에 머리채를 묶인 순교자들이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것이다

 

 

성지기념관내에 있는 '회화나무' 관련 조각

 

 

 

 

 

 

 

 

성당에서 종 대신 사용하였던 '뿔나팔'

 

 

기념관내의 전시품들

 

 

 

 

 

기념관내 대형 부조 모습

 

 

순교성지 뒷뜰

자리개돌 (피의 제사상)

신자들을 돌다리에 잔인하게 태질을 하여 순교케 한 돌다리인 자리개돌은

1956년에 찾아내어 서산 성당으로 옮겨 보관하다가 1986년에 원래 위치를 찾아 서문 밖으로 다시 옮겨 놓았으나 
도로가 개설됨에 따라 2009년 1월에 '여숫골'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자리개돌 윗면

 

 

성지기념관내에 있는 '자리개돌' 관련 조각

 

 

진둠벙

천주교 신자들을 산채로 둠벙에 밀어넣어 생매장한 곳으로

이 둠벙에 죄인들이 떨어져 죽었다 하여 동리사람들 입에 '죄인 둠벙'으로 일컬어지다가

오늘날에는 말이 줄어서 '진둠벙'이라 불리는 곳이다

 

 

성지기념관내에 있는 '진둠벙' 관련 조각

 

 

노천성당

 

 

 

서산 '해미순교성지'는.. 교통이 사통팔달(四通八達)로 시원하게 뚫려 있고

인근에는 수덕사로 유명한 덕산 도립 공원과 가야산. 덕산 온천. 태안 해안 국립 공원. 간월도 포구
그리고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볼 수 있는 안면도 등이 자리하고 있어

1박 2일의 주말 가족 순례 여행지로 제격이지만.. 무엇보다도

한국 순교지 중 유일하게 생매장 순교터와 그 순교자의 유해가 확인. 발굴되어

보존되어 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