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의 10년 행적이 서린 역사의 현장 '용궁사'
이번 무의도와 실미도 여행중 새롭게 알게된 내용은
인천국제공항이 영종도와 용유도를 합한 부지에 건설되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종도쪽은 공항 초입이라 그런지 공항신도시로 활발히 탈바꿈하고 있었지만
용유도쪽은 바닷가 옛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습니다
섬 여행중에서의 즐거움은 해변산책과 바다낚시 그리고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는 것 이지만
이번에는 무의도에서 1박을 하였기에 일정에 여유가 있어
돌아오는 길에 용유도의 '용엄사'와 영종도의 '용궁사'를 들렸습니다
영종도로 들어가기전 영종대교 초입의 모습
바닷가에서의 또 다른 즐거움은 '갈매기와 새우깡' 이었다
바다낚시를 하였던 무의도 근해
영종도 백운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용궁사는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전하는데
조선 철종 5년(1854) 흥선 대원군에 의해 다시 세워지며
지금의 명칭인 용궁사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용궁사'라는 현판의 글씨는 대원군의 친필이고 호인 '석파'가 선명하게 보인다
조선 말 양아치들과 어울리며 파락호 생활을 하면서
3대째 세도를 누린 안동김씨의 탄압을 피해 용궁사에서 10년간 생활하던 대원이대감은
조대비에게 은밀하게 밀서를 보냈는데.. 철종이 병석에 누워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소문이 나돌 무렵
조 대비는 그의 친정조카인 조성하로부터 편지 한 통을 은밀히 전해 받았는데
그 편지는 조성하의 장인인 이호준이 전한 것이요
이호준과 막역한 사이인 대원이대감의 밀서... 였다고 한다
그 밀서는 후사가 없는 철종의 후계로 대원이대감의 둘째 아들을 천거하는 내용이었다
대통의 승계자를 왕이 정하지 못하고 죽으면 대비가 결정하게 되어 있으므로
철종이 숨 거둘 때까지 김좌근 및 김문근 부자, 그리고 김병학 형제 등
안동 김씨 세도가들은 철종의 병문안을 핑계로 세도를 이을 계책을 세우고자 대궐에 들렀으나
조 대비가 미리 병석을 차지, 접근을 금한 가운데 철종은 눈을 감았고
그 순간 대권의 상징인 국새는 조 대비 치마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철종이 죽자 조대비는 대원이대감의 둘째아들을 왕권계승자로 지명하여
국왕(고종)에 즉위하게 되었는데 이때가 대원이대감 나이 44세때의 일이라고 한다
이 용궁사는 대권의 향배가 결정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 역사의 현장이여
은인자중 절치부심하던 대원이대감의 행적이 서린 곳 이었다
이곳에는 수령 1,3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두그루가 있는데
할아버지나무. 할머니나무로 불리우며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살아온 나무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커서 기념물로 지정하고 보호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나무
할아버지나무의 두꺼운 표피사이에 놓여있는 동자승
할머니나무
할머니나무에서 바라보이는 할아버지나무
용유도 최초의 사찰인 '용엄사'의 대웅전
경내에 있는 '눈물 흘리고 있는 부처'
빗물 자국이라면 다른 곳에도 흔적이 있겠지만
유독 눈밑에만 물이 흘러내린 흔적이 있는 특이한 부처상 이었다
영종대교 기념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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