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속의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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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의 청량한 바람을 느끼며 둘러 본 '문의문화재단지'

돌담* 2010. 4. 27. 22:43

 

 대청호의 청량한 바람을 느끼며 둘러 본

 '문의문화재단지' 

 

 

  대청호가 내려다 보이는 아름답고 시원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문의문화재단지

  1997년 대청댐 건설로 수몰될 전통 향토문화유적을 한곳에 이전.복원하여

  주민들에게 휴식 공간도 제공하면서 조상의 삶과 얼을 교육하려고 조성한 단지였습니다

 

  총 4만여평의 대지위에는 옛 객사인 문산관을 비롯하여 양반집. 민가. 주막집. 토담집과

  얼기설기 엮은 사립문 등이 그대로 복원되어 선조들의 생활사를 한눈에 볼수있었고.. 청원군내 문화재인

  장승. 성황당. 시묘막. 고인돌. 기자석 등 민속자료들이 단지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넉넉한 호수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을 느끼며 기분좋게 둘러 보았습니다

 

 

 

 

양성문

문화재단지가 자리잡은 양성산에는 신라 자비왕 17년(474)에 축성한 산성이 남아 있으며

이곳 성문의 명칭도 양성산성에서 인용하여 '양성문'이라 하였다 한다

 

 

문의문화재 입구에 세워져 있던 시비의 전문을 옮겨보았다

 

 古邑(고읍) / 霓谷 洪聖來(예곡 홍성래)
 
養性山(양성산) 靈氣(영기)받아 한자락 펼처지니
眞境(진경)좋을시고  福(복)하여라
모두가 큰 所望(소망) 지레 품고
태어나게 한 千年古邑(천년고읍)이여
 
文(문)과 義(의)로 氣極(기극)삼고 善隣(선린)바랫더니
정답던 이웃벗들 어디론가 흩어지고
아끼던 情(정)든 山河(산하) 마음에 새롭고야
大淸湖(대청호)에 잠긴 千年古邑(천년고읍)이여
 
陶唐山(도당산)에 비췬달빛 太古(태고)에 변함없고
無心(무심)한 물결보니 哀憐(애련)도하다.
恨(한)참고 눈물짓는 失鄕民(실향민)의 아픈마음
아는지 모르는듯 千年古邑(천년고읍)이여
 
榮枯(영고)의 긴 歲月(세월) 忠孝烈婦(충효열부) 태어나고
三國(삼국)의 名將(명장)들이 목숨걸고 다투든곳
넓은품에 물을 담아 蒼生(창생)의 젖줄되니
갸륵하다 너의베품 千年古邑(천년고읍)이여
 

 

 

성(성곽)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축조물로 청원군 지역에 남아있는 대부분은 산성이다

 

 

대청호가 내려다 보이는 성곽위에 놓여있는 솟대 

 

 

문산리 석교

 교가내에 '을묘이월'이라는 각자가 남아 있는 이 석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거친 석주를 갖춘 사령교이다

충청북도 내에서 옥천 청석교. 청주 남석교와 함께 몇개 남아있지 않은 귀중한 석교이다

 

 

양반집 입구에 있는 '정려각'

 조선말기 오늘의 문의면 등동리 정가울에 임진왜란 때 조헌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은 탈환한 후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충신 김선복(1571~1592)의 충적을 기리어 세워졌다

 

 

 

양반집

중부지방의 양반이 살았던 옛 가옥을 재현한 것으로

양반가 중에서도 문벌이 높은 사대부 가옥에 가까운 건축구조이다

 

 

 

 

 

 

 

 

 

 

  

 민가

 

 

 

 

 

 

 

 

 

 

 

대장간 

 

 

주막집 마루에서 짚으로 여러형태의 옛 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마을 노인들 

 

 

 

 

 

 문산관

지방문화재 제49호인 문산관은 전패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날에 임금이 계신 대궐을 향하여

절을 하는 의식을 거행하였을뿐 아니라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숙소로 사용하였던 건물로써

조선중기 지방관아의 건축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의 아득이 '고인돌'

선사시대 돌무덤의 하나로 청동기시대를 가늠케하며 1997년 4월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기자석

다산과 번식 그리고 굳건함을 상징하는 돌로 남근석 또는 아들바위로 불린다

 

  

돌담옆에 있는 만개한 벚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뽑내고 있었다 ♬  

 

 

 

 

 

단지 입구 주차장옆에 세워져 있는 '문의수몰 유래비' 

 

 

 

문의문화재단지    043) 251-3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