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미친 사람들이 소개한
'월미달빛누리' 여행
'인천'하면 떠오르는 것은 월미도. 인천국제공항. 차이나타운 그리고 연안부두로
바다를 바라보며 생선회를 먹고 싶을때 생각나는 곳이지.. 간단하게 여행을 갈 기회가 있어도
배를 타고 인천 앞바다에 있는 섬만 다녀오고 시내쪽은 생각지도 않던 곳이었습니다
이런 인천을.. 인천에 미친 사람들의 소개로 인천시내의 가볼만한 명소가 포함된
'월미달빛누리'라는 1일 여행상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주요 장소마다 문화관광해설사의 동행설명이 있다고 하여 주말을 이용하여 다녀온
인천에서의 하루 가족여행을 돌아 본 순서대로 올려봅니다
달동네 박물관인 '수도국산 박물관'
소나무가 많다 하여 송림산 또는 만수산으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인 1909년
산꼭대기에 수도를 공급하는 배수지가 들어서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게된 수도국산(水道局山)은
일본인들에 내몰린 가난한 조선인들의 보금자리가 된 곳이다
몇년전 까지만 해도 산 비탈 사이로 꼭대기까지 3천여 가구가 모여 살던 인천의 대표적 달동네였다
그 아련한 삶의 자취를 찾아볼수 있는 곳이 산 정상에 있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으로
1960~70년대 송현동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았다
인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답동 성당'
우리나라 초기의 성당 대부분이 날카로운 첨탑의 고딕양식인데 반해
답동성당은 둥근지붕의 종탑을 가진 로마네스크양식이다
적벽돌을 주 재료로 삼고 우리땅에서 나는 화강암으로 변화를 주었다
답동성당 내부의 창문은 예수의 일대기를 담은 오색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있고
답동성당은 인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이자 인천교구내 56개 본당을 총괄하는 주교좌성당이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의 체결로 개항장에서 토지매입과 건축이 가능하게 되자
1897년 프랑스 빌렘신부가 포교활동을 하면서 건립한 성당이다
한국 최초의 예배당이 세워진 '인천 내리교회'
내리교회의 역사는 1885년 4월5일 제물포항에 내린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1859~1902) 부부로 부터 시작된다
함께 입국한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는 서울로 향했지만 서울의 상황이 좋지않고
아내가 임신중이라 아펜젤러는 인천에 남게 되었다
아펜젤러는 첫 예배를 보고 1890년 이곳에 한국 최초의 교회인 '자비량 예배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감리교의 첫 걸음이 되었다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터 '인천 내동교회'
내동교회는 1890년 9월29일 제물포항에 도착한 영국성공회의 선교사인
고요한(charles john corfe)주교가 한국 성공회 최초의 교회인
'성 미가엘성당'을 세우고 첫 선교활동을 시작한 곳이다
이 성당은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고 그후 '성누가병원' 자리의 허름한 공간에서 주일미사를 드리다가
1952년 관할사제로 부임한 '전세창신부'가 1956년에 이 성당을 완성하였다
건축당시 한국교회 건축양식으로 유일하게 바실리카양식을 따른 건물이면서도 한국고유의 맞배지붕을 본따
기와를 얹고 한국의 전통을 살려 처마를 마감하여
창호및 벽체부분을 섬세하게 처리해 동.서양의 아름다움을 잘 조화한 성당이다
내동교회는 1891년에 인천에서 처음으로 서구식 병원인 '성누가병원'을 세우기도 했다
100주년 기념탑쪽으로 가다가 본 '병뚜껑으로 외벽을 치장한 건물'
하인천역 사거리에 있는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1시간 30분 동안 즐기는 월미도 유람선 관광
1,500톤급의 초대형 유람선인 코스모스호를 타고 월미도에서 인천대교를 다녀오는 선상관광으로
갈매기 떼에게 과자를 던져주거나.. 갑판 전체가 전망대로 만들어져 있는 4층에서 바다풍경을 감상하거나
1층~3층 선실 내부에서 벌어지는 러시아 무용수들의 댄스. 우크라이나 전통무용
중국기예단의 묘기. 라이브 연주 등 다양한 공연을 보면서 지루하지 않게 다녀올수 있다
* 2009년 10월16일 개통된 인천대교는 길이가 21.38km(서해대교의 3배)로
국내 최장 사장교이고 세계적으로도 5번째 규모라고 한다
초속72m의 태풍과 진도7의 지진에도 견딜수 있게 설계되었고 왕복 6차선이다
월미도의 '한국이민사박물관'
어려웠던 시절. 조국을 뒤로하고 이역만리로 떠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절절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처음 이민을 떠난 해가 1902년.. 한국인 이민자 102명을 태운 갤릭호가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태평양을 지나 하와이로 향했다
1903년 1월13일 하와이에 도착한 이민자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주인이 만들어 준
방고(번호표)를 하나씩 목에 걸고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우며 힘든 삶을 시작했다
첫 이민자의 여권
월미산 정상과 한국전통정원
월미산 정상의 '돈대'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월미산 정상까지는 걸어서 30분정도 소요된다
해발 108m의 월미산은 인천 상륙작전때 집중포화로 무성했던 숲은 불타고
산높이마저 깎였다고 하는데.. 꼬불꼬불한 계단을 올라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월미전망대에 오르면
서해바다와 인천항을 한눈에 볼수있고 갑문의 움직임도 자세히 볼수있는 곳이다
돈대 : 성곽이나 변방의 요지에 구축하여 총구를 설치하고 봉수시설을 갖춘 방위시설
월미전망대
월미산 정상에서 전망대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한국전통정원'지구가 있다
부용지. 애련지등 궁궐정원과 소쇄원. 국담원등 전국의 아름다운 전통정원을 모아 놓았다
안동 하회마을의 '영진당'을 재현해 놓은 건물 안밖에는 각종 민속놀이 기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형 자장면이 처음 생겨난곳인 '차이나타운'
한국의 화교들은 임오군란의 진압을 요청받고 온 '원세개'가
광동성의 군대 3천명을 이끌고 올 때 따라온 40명의 화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청국상인들은 1884년 개항으로 북성동 일대를 청국조계로 하고 청국영사관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였는데
1905년 22세의 청나라 청년 '우희광'이 조계지에 '산동회관'을 열었고
1912년 중화민국이 건립되자 이를 기념하여 공화춘(共和春)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자장면'이라는 이름을 얻던 시절에 공화춘이 차이나타운의 대표음식점 이었기에
최초의 자장면하면 공화춘이 거론되는데 지금은 건물이 너무 낡아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점심은 '원조할머니쭈꾸미'집에서 쭈꾸미볶음을
저녁은 '萬多福'에서 100년 전통의 원조자장면을 먹었습니다 ^^
짧은 하루 여행이었지만 인천은
역사 교과서에서 듣던 근. 현대사 이야기의 주 무대였고
인천 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 많은 최초. 최고가 있는 곳 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인천의 또다른 '역사의 현장'을 방문해 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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