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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리 명량대첩

돌담* 2009. 10. 20. 16:03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리 명량대첩

 

 

412년전 정유재란 당시 3백3십여척에 2만명의 군인을 싣고 

울돌목을 통과해야 하는 왜군은 133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으로 진입하였으나

이순신 장군과 지역민들이 13척의 배로 왜군을 대파하는 승리을 거두어

정유재란의 대세를 바꾸고 왜군의 서해로의 진출을 포기하는 계기가 된 

명량(울돌목)대첩 축제를 소개합니다 

  

 

땅끝 해남 우수영관광지 (명량대첩공원) 에서 10월9일 부터 10월11일까지 개최된 명량대첩 축제

 

 

행사가 펼쳐질 울돌목 바다위에 세워진 진도대교

 

 

해남쪽 해변에 마련된 우수영무대 

 

 

재현된 명량해전 ( 진도대교를 건너 맞은편에서 관람 ) 

1597년 9월16일 새벽 133척의 왜선이 어란포를 지나 밀물을 타고 명량으로 진입하자

 

 

이순신13척의 배로 일자진을 형성해 적을 향해 돌진하였다

 

 

군사력은 왜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지만 이순신은 후퇴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거제 현령 안위와 중군 김응함등을 독려해 적진으로 돌진시켰는데.. 적선3척의 왜군이 안위의 배에 올라 격전이 벌어졌고

이순신은 총통을 쏘아 3척을 불질렀고 마침 북서류하던 해류가 점차 남동류로 바뀌어 조선군에게 유리해졌다 

 

 

이때 안골포해전에서 투항했던 왜인 준사가 적선을 내려다보고 왜군의 수군장수 구루시마를 가리켜주자

이순신은 그를 끌어올린뒤 목을베어 높이 매달았다. 이에 분노한 왜수군이 일제히 덤벼들자

 

 

이순신은 총통과 불화살을 쏘아대며 방향이 바뀌는 조류를 이용해 공격함으로써

 

 

 왜선 31척을 격파했고 왜군은 달아나 버렸다 

  이후 정유재란의 대세가 바뀌고 왜군의 서해로의 진출을 포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외방문단석에서 관람하고 있는 일본 청년들을 포함한 외국인들

 

 

명량대첩탑회령포결의 조각상

명량을 최후의 결전장으로 삼고 회령포에 당도한 수군통제사 이순신과 다섯명의 장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것을 맹세하는 모습 

 

 

울돌목 - 명량해협에 대한 설명문  

 

 

우수영 관광지 (명량대첩공원) 입구 

 

 

 우수영 입구에서 벌어진 수문장 교대식

 

 

명량해전재현 전에 펼쳐진 우수영 무대에서의 연예단 공연과 

 

 

해군군악대 의장대의 공연

 

 

 

 

 

 술래마당에서 벌어진 최고의 강강술래팀을 뽑는 경진대회

 

 

 도립국악단의 '명량의 북소리' 공연장면

 

 

 

 

 

 

 

 

 

 

 

울돌목 바닷길을 굽어보고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해남군 우수영관광지 . 진도군 녹진관광지

명량대첩 기념사업회 061) 286-5254

www.명량대첩.kr